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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다_vol. 10

차영지 외 | 2022년 11월 01일

가격 8,000원 | 면수 96

슬기로운 번역 생활을 지향하는 사람들 이야기_번역하다_vol. 10

  • 책소개

    슬기로운 번역 생활을 지향하는 사람들 이야기_번역하다_vol. 10

     

    별별 이유로 매몰차게 등을 돌린 세상에서 아등바등 사는 번역가들의 일상과 생각과 철학을 엿보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원고를 보니 번역가의 희로애락과 성찰이 잘 어우러져 한 작품나오겠다 생각했다. 번역가는 보편적인 작가가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른 희열과 좌절을 느낀다. 원작이라는 경계와 틀을 벗어날 수 없는 탓에 100퍼센트 창작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경계는 늘 애매하고 모호하다. 이때 경계선을 조율하는 주체는 오직 번역가뿐이다. 은연중에 선을 넘는 경우도 더러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독자가 (원문을 모르는 터라) 되레 이를 반기는 기막힌 상황도 연출된다. 그러면 속으로는 조바심이 나겠지만 겉으로는 멋쩍은 미소를 날릴 것이다. 그 외의 생생한 경험담도 기대해 봄직하다.

  • 저자 및 옮긴이

    이 진

    전은정

    유호진

    차영지

    Bahniesta

    이은진

    김진환

    코디정

     

  • 목차

    cover story

    번역, 그 만만한 위상에 관하여 / 이진

     

    life & work

    이해란 오만한 착각 / 전은정

    저는 골치아픈 번역가입니다 / 유호진

    번역의 기술 / 차영지

    영작 / Bahniesta

    프리랜서든, 회사원이든 / 이은진

    번역으로 생계유지가 될까요? / 김진환

    명사를 보는 눈을 키우라 / 유지훈

     

    시의 한 수

    피르케이 아보트 5:7 / 여후다 하나시

     

    번역논단

    괘씸한 철학번역 1 / 코디정

     

    번역가의 서재

    번역의 말들

  • 본문중에서

    번역, 그 만만한 위상에 관하여

    이진

     

    처음 번역 일을 시작했던 25년 전에도 사람 대신 기계가 번역할 날이 멀지 않았는데 사양 산업에 뛰어든다며 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미래는 너무도 멀리 있었고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고 해도 오늘 한 줄 번역하고 싶었던 나에게 그런 말이 귀에 들릴 리 없었다. 나는 사람 대신 로봇이 컴퓨터 앞에 앉아 번역하는 상상을 하면서, 그런 기괴한 날이 올 리 없다고 확신했다.

     

    요즈음 구글 번역을 비롯한 각종 통번역 앱의 활용도와 위상을 보면, 비록 내가 상상했던 모습은 아니지만 기계 번역은 어느덧 엄연한 현실이 되었다. 인공신경망을 기반으로 한 기계번역은 적어도 초벌 번역 이상의 작업을 해낸다. 구글 혼자서 100개 이상의 언어를 번역하고 파파고는 13개의 언어를 번역한다니,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효율적인 번역가다. 인간 번역가들이 그동안 대단한 특권을 누려온 것도 아닌데, 이젠 인공 지능과도 밥그릇 싸움을 해야 하나?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 이세돌도 알파고에 54로 패했는데 말이다.

     

    번역은 여러모로 참 만만한 일이고 갈수록 더 만만해진다. MZ세대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언어의 장벽을 높고 두렵게 느끼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접해온 그들은 SNS를 포함한 각종 매체를 통해 다양한 언어권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흡수하며 자란다. 자신이 좋아하는 K-POP 가수의 신곡을 영어로, 프랑스어로, 아랍어로 번역해서 올리는 빠르고 친절한 번역 자원봉사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번역이 전문지식을 가진 소수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과거 세대에 비하면 요즘 젊은이들에게 번역은 그저 일상일 뿐이다. 진입 장벽이 낮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지다 보니 타인의 번역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아졌다. 쉽게 말해서,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비판 정도는 거의 누구나 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번역이라는 직업은 근본적으로 여러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선 번역의 대상인 원문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일이라 원문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약점이 있다. 또한 아무리 뛰어난 번역가라도 원문을 작가만큼 이해할 수는 없다는 점도 번역가의 위상을 작가의 아래로 보는 시각에 일조한다. 물론 번역이 원문을 뛰어넘었다거나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그것은 번역된 작품이 수상을 하거나 독자들로부터 압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경우 한정적으로 용인되는 일일 뿐이고, 그 마저도 오역이나 과잉 번역 혹은 축소 번역 등의 논란을 피할 수 없다. 번역을 너무도 사랑하는 나이지만 때때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번역은 정말 그렇게 만만한 일인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렇지 않다. 출판사 편집부 직원들은 늘 믿고 일을 맡길 번역가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좋은 작품을 좋은 번역가에게 맡기기 위해 1년 혹은 2년 정도는 기꺼이 기다린다. 물론 대부분의 번역가들이 고독한 섬처럼 홀로 일해서 좋은 번역가를 찾기 힘든 면도 있고 프리랜서의 세계가 워낙 빈익빈 부익부의 원칙이 적용되는 곳이라 일의 쏠림 현상이 있는 것도 한 요인일 수는 있겠지만.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단 한 번이라도 번역해본 사람이라면, 아무리 기술이 진보해도 문학 번역을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문학은 가전제품의 매뉴얼과 다르다. 문학은 정보가 아닌 기쁨과 슬픔과 분노와 희열을 전달한다. 웃어본 적도 울어본 적도 없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그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까? 가슴이 먹먹해지는 한 문장의 단어를 고르고 또 고르며 번역하는 인간의 자리에 인공지능이 끼어들 수 있다고? 나에겐 마치 섬세한 나비의 날개를 밀가루 반죽으로 빚어낼 수 있다는 말처럼 허황되게 들린다.

     

    소설 독자들은 정보를 얻기 위해 400페이지짜리 소설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울고 웃고 분노하고 희열을 맛보기 위해 책장을 넘긴다. 만약 인공지능이 원문을 완벽하게 옮길 수 있다면 그건 이미 문학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