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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다_vol. 11

차영지 외 | 2022년 12월 01일

가격 8,000원 | 면수 96

슬기로운 번역 생활을 지향하는 사람들 이야기_번역하다_vol. 11

  • 책소개

    슬기로운 번역 생활을 지향하는 사람들 이야기_번역하다_vol. 11

     

    별별 이유로 매몰차게 등을 돌린 세상에서 아등바등 사는 번역가들의 일상과 생각과 철학을 엿보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원고를 보니 번역가의 희로애락과 성찰이 잘 어우러져 한 작품나오겠다 생각했다. 번역가는 보편적인 작가가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른 희열과 좌절을 느낀다. 원작이라는 경계와 틀을 벗어날 수 없는 탓에 100퍼센트 창작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경계는 늘 애매하고 모호하다. 이때 경계선을 조율하는 주체는 오직 번역가뿐이다. 은연중에 선을 넘는 경우도 더러 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독자가 (원문을 모르는 터라) 되레 이를 반기는 기막힌 상황도 연출된다. 그러면 속으로는 조바심이 나겠지만 겉으로는 멋쩍은 미소를 날릴 것이다. 그 외의 생생한 경험담도 기대해 봄직하다.

  • 저자 및 옮긴이

    이진

    김재연

    이은진

    Jose

    기서우

    차영지

    크리스

    코디정

  • 목차

    cover story

     

    끝까지 간다는 것 / 이진

     

    life & work

     

    번역회사 다닙니다 / 김재연

    작가의 이름으로 마주한 계약서 / 이은진

    한글의 사막화 / Jose

    대충 호기심 유발하는 제목 / 기서우

    자연스런 우리말은? / 차영지

    영어 실력에 확신이 없을수록 가져야 할 3가지 자세 / 크리스

    역자 후기 / 유지훈

     

    시의 한 수

     

    Talmud

    Pirkei Avot | Yehuda HaNasi

     

    번역논단

     

    괘씸한 철학번역 2 / 코디정

     

    번역가의 서재

     

    번역하는 마음

    서라미 | 제철소

  • 본문중에서

    끝까지 간다는 것

    이진

     

    새로운 책의 첫 장을 펼쳐 첫 줄을 번역하는 순간의 설렘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몇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그 소중한 순간을 위해 나는 책상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읽는 것과 번역하는 건 전혀 얘기가 다르다. 번역에 앞서 작품을 대충 읽어보았더라도 원서의 한 줄이 모니터의 한 줄로 환생하는 그 순간, 비로소 이번 작업에 대한 느낌이라는 게 온다. 그저 읽는소설이라면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 때 내던지고 다른 책을 집어 들 수 있겠지만, 번역하는 책은 그럴 수가 없다. 번역은 첫 느낌과 상관없이 무조건 끝까지간다.

     

    작품에 대한 나의 판단이나 평가가 끝까지 유지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초반에는 문장이 좀 답답하다 싶어도 후반부로 갈수록 휘몰아치기는 에너지가 느껴지기도 하고, 강렬하고 인상적인 첫 문장에 비해 뒤로 갈수록 짜릿한 한 방이 없는 경우도 있다. 끝내 내가 기다렸던 한 방이 없었는데도 막상 번역을 마치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작품도 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는 것이 예전처럼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는 시대에, 어쩌다 보니 한 가지 일을 오래 하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번역 일의 여러 가지 얼굴을 보게 되었다. 성공은 그 바닥에서 가장 많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라고 했던가. ‘버티기에 성공했다면 성공한 나도 이 바닥에서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실패와 좌절을 맛보았다.

     

    지난 25년 동안 내가 번역한 소설이 출간되지 않은 경우는 두 번 있었고, 번역료를 받지 못한 경우는 한 번 있었다. 내 번역에 대한 신랄한 공격을 받은 적도 두 번 있었다. 나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번역 일을 했던 원로 번역가도 때로는 이런 공격을 받는다는 담당 편집자의 얘기를 듣고 크게 위로받으면서 번역 선배의 고통으로 위로받는 내가 참 한심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비판보다 더 뼈아픈 고통은 오래전에 내가 했던 번역을 다시 대면할 때 찾아왔다. 절판된 번역서를 10년 만에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하게 되었는데, 10년 전 나의 번역을 그대로 사용하고 싶다면서, 혹시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수정해 달라고 했다. 간단한 수정 작업을 예상하고 원고를 받았는데, 번역이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나쁜 쪽으로. 이게 정말 내가 한 번역인가 싶을 정도로 오독과 오역이 많았고 건질 문장이 하나도 없었다. 이게 다른 사람의 번역이었다면 내가 얼마나 신랄하게 비판했을까. 결국 나는 기존 원고를 수정하는 것을 포기하고 몇 달에 걸쳐 처음부터 다시 번역하다시피 했다.